내가 대한민국 IT 업계에 하고 싶은 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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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라면서 우리 아버지께 배운 것들 중에서 가장 큰 것 세 가지가 있다. 이 세가지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 되었다. 아버지는 그것을 항상 옛말에 비유해서 말씀하시곤 했는데 그건 아래와 같다.

  1. 정승집 개 죽은 데는 문상 가도 정승 죽은 데는 안간다.
  2.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다.
  3. 말로 떡을 하면 온 나라가 먹고도 남는다.

첫 번째는 내가 사회와 인간 관계를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했고, 두 번째는 다소 성격이 옹고집이고 주장이 강한 나에게 가끔씩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말이다.

세 번째는 언제든 말보다 행동이 중요 하다는 것을 나 스스로에게 각인시켜 주는 말인데, 새삼 요즘 이것에 관해서 많은 생각이 든다. 당장 내가 몸담고 있는 IT 분야에 비유해서 말이다.

대한민국의 IT 업계는 뭔가 좀 이상하다. 마치 비유하자면 점잖은 정승 몇이서 바둑을 두는데 계산은 내가 할테니 돌을 놓은 미천한 일 따위는 김서방을 시키면 되지뭐… 이런 마인드로 가득차 있는것 같다. 그런데 소프트웨어 개발은 생각하는 것처럼 바둑을 계산해서 딱 놓기만 하면 되는게 아니다. 그런데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면 학교에서도 이렇게 가르킨다. 설계와 구현의 분리…

과연 이게 정말 현실에서도 잘 적용될까? 뭔가 크게 착각하는게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은 개발 그 자체가 이미 전문 기술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국내에서는 개발자라는 직업이 마치 삽질하는 직업과 동일시된다. 학원 두어달 다니면 대충 개발하고 저 위에 누군가가 설계만 잘해서 딱 던져주면 개발이 되는줄 안다. 그렇다고 그 설계가 정말 딱 그것만 보고 설계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다. 그렇게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보질 못했다. 설계와 개발은 병행 되어야 한다. 내가 학원출신을 비하하고자 하는 얘기는 아니다. 집에서 독학하건 학원에서 배우건 전공을 했건 상관없다. 전공해도 개발의 개자도 모르는 사람도 천지니까. 중요한 건 각 개인의 실력을 말하는 거다.

외국엔 기획 이라는 직군이 따로 없다. 한국에서는 개발하는 사람이 멍청이들만 모여있는줄 아나보다. 개발자들도 생각할 수 있다. 뭔가 거창하게 기획하는 사람들이 파워포인트로 떡하니 그려서 우리한테 주지 않아도, 개발자들이 모여서 자기들이 생각한 것을 기획하고 심지어는 그걸 구현물로 내놓을 수도 있다! 이게 중요하다. 실제 구현물… 우리는 기획하는 사람들이 외국에서 어디 좋은 것만 보고 듣고 와서는 멋진 문서를 만든다. 그리고 멋진 문서로 던져 줬으니 개발 결과물이 제대로 안나오는건 돈 케어~ 만약 잘되면 기획한 사람이 공을 다 차지한다. 난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구현물의 질이라고 본다.

사람들은 페이스북이 뭔가 새롭고 기발해서 이렇게 인기가 많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SNS는 이미 10년 전에도 나왔던 용어이고 국내에선 싸이월드가 있었다. 그런데 페이스북은 똑같은 SNS를 잘 만들었다. 친구를 출신학교나 회사를 기반으로 잘 찾아주었고, 싸이처럼 파도타기를 안해도 담벼락에 RSS 피드 형식으로 최신 글이 순서대로 표현 되었다. 이는 주커버그가 어느날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파워포인트로 예쁘게 만들고, 윗분들에게 잘 시연한 다음, 돈 몇푼 쥐어주고 SI 프로젝트 발주해서 개발자들이 만들었는데, 결국은 아이디어가 좋아서만 성공한게 아니라는 말이다.

구글의 검색도 마찬가지다. 이미 웹에서 검색이라는 패러다임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경제학적 관점으로 바라보자면 레드오션이다 이거다. 이론은 좋군… 레드오션… 더구나 이미 쟁쟁한 야후와 같은 포털도 있었다. 구글의 검색이 뭔가 창의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라서 성공한게 아니라는 뜻이다. 구글 창업자 래리와 페이지가 대학에서 검색엔진을 공부해서 초기버전의 검색엔진을 만들어 놓고 그걸 실리콘밸리에서 펀딩 받아서 이만큼 성공한거다. 우리나라는 개발 좋아하고 그런거 만들어도 어디서 펀딩해 주는데도 없다.

21세기 초반에 미국이나 우리나 같이 IT 버블이 터졌는데, 미국은 아직도 실리콘밸리에서 뭔가 새로운 시도가 계속 일어나고 그것을 지원해주는 펀드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때 벤처하던 사람들이 한번의 실패로 은행에서 신용불량자 딱지를 달고, 다시는 절대로 다시는 사회에서 발도 못 디디게 주홍글씨를 박았다. 그래도 꾸준히 이어왔던 업체들은 결국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목을 죄인다. 테헤란로에 그나마 살아남은 게임업체들도 점차 게임을 하청주고 갑질만 하려고 한다. 우리는 덩치가 좀만 크면 개발을 직접하면 없어 보이는가 보다.

조선의 양반사회가 낳은 산물인지는 몰라도 한국에서 공대생은 잡과다. 문무(文武)과를 제외하고 예체능과 이과는 잡과였다. 그래서 우리는 공부해서 판검사가 되면 출세했다고 하지, 공대생이 되면 천시한다. 그건 그들 스스로도 마찬가지다. 군인들이 군인들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런가… 우린 기획하고 위에서 말만하는 사람들이 뭔가 대단한 일을 한다고 착각하고들 살아간다.

능력있는 사람들이 점점 이쪽 계통으로 오지 않고 있다. 모교 학부만 봐도 후배들이 컴퓨터공학 전공을 택하는 것보다 산업공학을 전공하려고 한다. 국가 전체가 공무원이 되고 싶은 대학생들로 가득차고, 너도나도 스탭이나 기획과 같은 부서만 가고 싶어한다. 요즘 개콘 유행어 마냥 그럼 소는 누가 키우냐 이 말이다.

SW 개발자들은 단순 노무직이 절대 아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사실을 잊고 있다가 (인터넷 망 빠르고 PC방이 많아서) 소위 IT 강국이라고 불리는 우리 나라가, 제조와 토목만 해서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즈음엔… 정말 그때는 능력있는 개발자들은 다 외국으로 떠난 뒤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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